레고랜드와 IMF 데자뷔 [안창현의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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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와 IMF 데자뷔 [안창현의 돋보기]
  • 한국면세뉴스
  • 승인 2022.10.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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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말 한마디가 국가 신용도에 극심한 타격을 가하며 건설, 금융권을 넘어 자칫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내몰릴 위기를 자초하며 1997년 IMF 사태의 데자뷔(deja vu :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가 떠오른다.

당시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외환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보철강, 기아자동차 등 기업들의 무분별한 차입 경영과 분식회계, 금융기관들의 방만한 경영도 한몫하며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다.

레고랜드 문제의 발단은 2012년으로 돌아간다. 당시 강원도는 전국 여러 지자체의 치열한 경쟁을 제치고 ‘레고랜드’의 사업권을 가진 영국 회사인 ‘멀린 엔터에인먼트 그룹(이하 멀린)’으로부터 ‘레고랜드’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강원도는 사업추진을 위해 2012년 강원도를 포함한 전략적 투자자, 재무적투자자, 외국투자자가 출자한 특수목적법인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이하 GJC)를 설립, 사업시행자로서 춘천시 중도동 일원 1,068,000㎡(약 324,000평)에 레고랜드 테마파크 및 숙박시설을 포함한 관광시설로 개발하는 사업 시행을 계획했다.

총 사업비 5,270억 원 가운데 멀린이 4,470억 원, 나머지는 GJC가 투자하기로 MOU를 체결하고 2015년 개장을 목표로 첫삽을 떴다.

그러나 레고랜드는 2014년 공사 현장에서 대규모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면서 공사가 지연되고 결국 위치와 놀이공원 설계를 바꾸면서 문화재청은 유적지 보존을 전제로 사업을 허가, 2017년 사업이 재개됐다.

이어 2018년 강원도는 멀린과 총괄개발협약(MDA)을 맺고 멀린이 2,200억 원, GJC가 800억 원을 투자해 멀린이 직접 개발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당시 강원도와 GJC는 800억 원 투자로 임대수익 배분비율을 30.8%라고 도의회에 보고했으나 실제는 3% 수준이었고 강원도 소유의 부지에 사업을 위해 50년 무상임대를 약속, 외국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이 알려지며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거의 11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레고랜드는 완공됐지만, 강원도는 이 사업을 위해 GJC를 통해 은행, 증권사 등에서 빌린 돈과 채권 발행으로 진 빚이 2,050억 원에 달했고 지난 9월 29일 채권 만기일이 도래했음에도 강원도는 돈을 갚을 여력이 없었고 상환기간이 다가오기 전 기한 연장에 합의했는데도 김진태 지사는 정부와 단 한 마디 협의도 없이 GJC를 회생신청 하겠다며 사실상 디폴트(default : 채무에 대한 이자 지불 또는 채무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는 상태, 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강원도가 빌린 2,050억 원은 사실상 강원도가 채무 보증한 지방채로 보통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한 채권은 망할 일이 거의 없어 매우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런 국가나 다름없는 지방자치단체인 강원도가 디폴트 선언을 하면서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도 팔리지 않게 되고 PF에 투자한 증권사와 건설사를 비롯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부실 위험이 커지며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이 줄도산 위험에 놓이게 됐다.

이는 또 부동산 분양시장 위축, 건설 자재비 증가로 부동산의 금융 리스크를 키우고 지역 건설사를 중심으로 경영난과 줄도산도 예고하는 것이다.

도지사 한 사람의 폭탄선언으로 전체 국가 경제가 휘청이자 정부는 급기야 50조 원+α의 자금 공급을 통해 유동성 공급을 약속하며 급한 불은 껐지만, 국가 신인도에는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대해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27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검찰 출신 ‘경알못(경제를 알지 못하는)’ 김진태 도지사 헛발질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며 우리 경제가 한층 더 위태로운 지경이 이르렀다”며 “문제 진원지인데도 남 일처럼 유감을 표명한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무능이 빚은 국가적 참사를 인정하고 즉각 지사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 정부 경제라인을 향해 “경제수장 3인방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확산될 단계가 아니라던 추경호 부총리, 이럴 줄 몰랐다는 김규현 금융위원장, 사후에 알았다는 최상목 경제수석까지 한결같이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싸잡아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과연 윤 대통령이 이 사태에 제때 보고 받은 것인지 의문이다. 대통령은 김진태 사태의 심각성을 언제 보고 받았나, 보고받았다면 어떤 대응책 지시했나”며 “무능한 경제수장에 둘러싸여 결재 도장만 찍는 무능한 바지사장으로 오인당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은 분명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가 경제는 심리적인 측면이 강해서 경제 정책을 이끄는 경제라인과 도지사의 말 한마디에 따라 잘못된 시그널(신호)을 주면 엄청난 피해와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대통령실과 정부의 경제 정책을 책임진 사람들은 일이 터지면 우와좌왕(右往左往)하지 말고, ‘사후 약방문’이 아닌 내부 조율이라도 제대로 해서 앞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쓸데없는 혼란과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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