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이라더니...딜과 회유 뉘앙스 꺼낸 어느 기업 [박주범의 딴지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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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이라더니...딜과 회유 뉘앙스 꺼낸 어느 기업 [박주범의 딴지딴짓]
  • 박주범
  • 승인 2022.08.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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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기사 내리세요"

편집국장의 의견이 아니다. 국내 한 배달앱을 운영하는 기업의 홍보팀장 A씨의 말이다. 통화하는 내내 귀를 의심했다. A씨는 기사 내리라는 말을 수 차례 반복하며 "어떻게 회사 입장을 물어보지도 않고 기사를 쓰냐"며 분노했다.

전후사정을 살펴보자. 지난 10일 오전 한 매체는 해당 기업이 평소 직원에게 잦은 폭언에 지역비하 발언 등을 한 사내 임원을 자체 조사한다고 보도했다. 한국면세뉴스는 이 기사 내용에 대해 해당 기업의 홍보부서 직원에게 회사의 입장을 문의한 다음 송출기사 말미에 '질의에 대한 기업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명기해서 기사를 송출했다.

기사 송출 후 홍보직원은 회사 입장을 전하며 "사내 조사 결과가 다음 주에 나오니 그때까지 기사 송출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내용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한국면세뉴스는 전달 받은 회사 입장을 추가해 재송출했다.

재송출하자 A씨는 전화를 통해 '기사 내리라'는 요청(?)을 반복했다. 필자는 회사입장을 반영했고, 전체적으로 내용에 문제가 없음을 수 차례 전했으나 쇠귀에 경읽기였다. A씨의 대화는 '기승전, 기사삭제'였다.

"이렇게 기사 쓰는 것은, 이건 협박 아닌가요?"

어처구니가 없다. 협박이란다. 없는 일 쓴 것도 아니고 형식 다 갖춰 쓴 기사를 협박이라고 치부하니 할 말이 없었다. 통화의 끝도 기승전, 기사삭제였다.

"(기사 내리는 거) 내부상의해서 전화 주세요"

1시간 30분 후 A씨가 다시 전화했다. 역시나 첫 마디는 기사 내리라는 말이었다. 내용에 문제 없음을 재차 전했지만, A씨와 필자 사이에는 기승전, 무한반복이 시작됐다.

"기사 내리세요" "내용에 문제가 없습니다" "기사 내려주세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내용에 문제 없습니다"(반복)

A씨가 불쑥 제안을 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기사 내려주실 건가요?"

첫 통화에서는 협박이라 하더니, 이제는 기사삭제에 대한 딜(deal)을 제안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 순간 헷갈렸다. A씨는 말을 계속 이었다.

"앞으로 우리(A씨 회사와 한국면세뉴스) 잘 지내야 하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건 또 뭔가? 딜 제안도 모자라서 회유까지 하는 모습에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홍보팀장이라는 자리가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졌다. 필자가 할 말은 단 한마디뿐이었다. "기사 내용에 문제가 없습니다"

A씨는 모든 걸 포기했는지 두 마디 전하곤 전화를 끊었다.

"해당 임원이 명예훼손 당했다고 난리다" "회사는 향후 (한국면세뉴스에) 어떤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조치라면 아마 '법적 조치'를 뜻하는 것 같다. 필자는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발언이 경고나 협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누구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취할 수 있는 권리 중 하나가 법적 조치다. 이 권리는 누가 뭐라해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 임원에게 폭언과 비하 발언을 들은 직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해당 직원들은 인격모독, 폭언, 고성 등으로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 요청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직원들의 이러한 '법적 조치'에 대해 이 기업과 해당 임원은 향후 고용노동부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무조건 받아들일까? 

그 회사와 짧게 통화한 필자의 판단은...'글쎄요'다. 

박주범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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