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History] 프렌치 럭셔리 "S.T.듀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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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History] 프렌치 럭셔리 "S.T.듀퐁"
  • 김형훈
  • 승인 2015.09.3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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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Dupont visual 2오늘날 S.T.듀퐁은 전 세계적으로 프렌치 럭셔리와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S.T.듀퐁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궁금해한다. 사실 이 이름은 브랜드의 창립자인 시몬 티소-듀퐁(Simon Tissot-Dupont)의 이니셜과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872년 프랑스 사보이(Savoy) 지방의 한 젊은이가 고작 25세의 나이로, 직접 디자인한 스케치를 모티브로 한 지갑류나 데스크 패드와 같은 고급 가죽 제품을 취급하는 상점을 열었다. 이 사업은 즉각 성공을 거두어 유럽 각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많은 로열 패밀리와 거래하게 되었다. 이후 1940년대에 라이터, 1970년대에 필기구 분야에 진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S.T.듀퐁은 그 자신을 유명하게 한 금속세공술과 차이니즈 래커 기술을 사용하기 이전인 20세기 초부터 이미 여행가방 제작자(Travel Case Master)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 시기 여행을 즐기는 유럽의 상류층 사이에서 품질 좋은 가죽과 섬세한 수공 작업으로 완성된 S.T.듀퐁의 여행가방들은 매우 큰 인기를 끌었다. 태국의 여왕은 검정 악어 가죽으로 만든 여행가방을 소유했으며, 이집트의 왕과 그의 왕비, 이란의 황후, 덴마크의 여왕, 윈저공과 그의 부인, 영국의 은행가였으며 유태인으로 최초의 하원의원을 지낸 로스차일드, 인도의 왕후인 마하라자 등 세계 각국의 로열 패밀리로부터 주문이 이어졌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지금은 영국의 여왕인 어린 엘리자베스 공주의 결혼식 선물로 사용할 라벤더 블루 컬러의 여행가방을 주문하기도 하였다. 이 환상적인 주문생산 여행가방들은 매우 고급스럽고 아름다웠으며, S.T.듀퐁을 여행가방 제작에 있어 완벽한 장인정신을 가진 마스터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다.

1930년대가 시작될 즈음 S.T.듀퐁은 금속세공 장인, 크리스탈 메이커, 도금공, 가죽 장인과 차이니즈 래커 장인들과의 공동 작업을 기획하고 파베지(Farveges) 공장을 오픈하였다. 파베지는 사보이 지방에 위치한 듀퐁 가문의 고향이었으며, 이 공장은 현재도 전문적인 지식의 가디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금속에 차이니즈 래커를 접목시키는 기술을 비롯한 핵심 노하우는 현재까지 비밀로 전수되고 있다. 이러한 혁신과 진보는 S.T.듀퐁이 1940년대 새로운 가스 라이터를 비롯한 새로운 럭셔리 아이템들을 통해 브랜드의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 필기구, 액세서리, 기성복 시장으로 도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뛰어난 가죽 제조 기술이 S.T.듀퐁의 시작이었지만 그에 바탕을 둔 섬세한 장인정신은 단지 가방 제조 기술 뿐 아니라 금속세공 및 차이니즈 래커 기술로의 끊임없는 도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오랜 역사와 끊임없는 진화 속에서 프랑스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완벽하고 독창적인 새로운 아이템과 혁신적인 기술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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