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의 '햇빛 속의 여인'은 무슨 까닭에 고독해 보일까?[kd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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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햇빛 속의 여인'은 무슨 까닭에 고독해 보일까?[kdf ART]
  • 이수빈
  • 승인 2023.04.2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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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해외소장품 걸작 전으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회가 지난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4개월 동안 열린다.

에드워드 호퍼의 65년간의 화업을 총망라, 뉴욕 휘트니미술관 소장의 160점의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작품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 자료 110여 점 등 270여 점의 작품을 을 7개의 섹션으로 나눠 시립미술관 1, 2, 3층에서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2층에서부터 시작한다. 에드워드 호퍼가 미술학도였을 때부터의 습작 드로잉, 또 미술 전공 후 삽화가로 활동하던 시기의 잡지 표지를 시작으로 예술의 도시 파리를 방문해 활동한 파리 풍경화들이 전시된다. 

상. 에드워드 호퍼 '아파트 건물들, 이스트강' 1930년 경하. 에드워드 호퍼 '도시의 지붕들' 1932.
상. 에드워드 호퍼 '아파트 건물들, 이스트강' 1930년 경/ 하. 에드워드 호퍼 '도시의 지붕들' 1932.

이어 화가로서 활동하던 호퍼의 주요 무대인 뉴욕 배경의 작품이 소개된다. 1920~30년대 마천루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던 뉴욕의 모습이, 고층 아파트의 수직선과  도심 빌딩의 지붕을 넘어선 고층 빌딩의 단편이 묘사돼 있다.

상. 수채화 에드워드 호퍼, '석회암 채석장' 1926. 하. 유채화 에드워드 호퍼, '안개속의 메인' 1926-29.
상. 수채화 에드워드 호퍼, '석회암 채석장' 1926.
하. 유채화 에드워드 호퍼, '안개속의 메인' 1926-29.

뉴욕의 모습은 3층 전시장으로 계속 이어져 새롭게 시도한 에칭 작업을 시도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미술학교 동기였던 조세핀 니비슨이 그의 인생에 아내로 등장하는 뉴잉글랜드의 시기에는 아내의 영향을 받은 수채화 작품들이 등장한다. 바로 옆에는 유채화 작품들이 있어 풍경화로서 유채화와 수채화의 느낌을 비교하며 관람할 수 있는 재미를 준다.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 시기 미국인의 삶을 그린 이야기다. 이 시기 화가 호퍼와 아내 조세핀은 수년에 걸쳐 미국 곳곳을 여행한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기의 미국, 여행에서의 영감과 호퍼의 감수성 넘치는 상상력은 '철길의 석양'이라는 작품으로 표현됐다.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뉴잉글랜드의 오건킷과 몬헤건섬. 호퍼의 풍경화 소재를 제공한 장소들이다. 뉴잉글랜드 지역이 맘에 들었던 화가 부부는 케이프코드에서 생활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 명성을 쌓아간다. 화가가 평생 화업을 쌓으면 메모와 연습용 스케치를 한 '장부'도 쌓여간다.  이 장부는 총 4권으로 매니저 활동을 한 아내 조세핀의 손을 거쳐 작가 사후 작품과 함께 휘트니 뮤지엄에 기증됐다.

그의 평생의 그림 작업을 정리한 연보와 아내와의 생활들은 1층 전시장에 영상으로 또 각종 기록물과 사진으로 전시되고 있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알게 된 것은 최영미 시인의 '화가의 우연한 시선'(2002, 돌베개)를 통해서였다. 최 시인이 소개한 호퍼의 '햇빛 속의 여인'이란 그림을 보고서는 한동안 그 페이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분명 롱헤어의 나신(裸身)의 여인은 화가의 표현처럼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속에서 빛을 마주하고 서 있는데 너무 스산하고, 고독해 보였다.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인,1961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인,1961

그녀의 한 손에 끼워진 담배까지도 고독함을 배가시키는 장치가 됐다. 곁에는 그녀가 막 빠져나온 듯한 싱글침대와 한쪽은 쓰러져 있는 펌프스까지. 그녀의 나신은 분명 햇빛 속에 노골적으로 노출됐지만 전혀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탈리아 고전주의 조각처럼 근육질 허벅지를 지닌 햇빛 속 여인은 그늘진 눈에 무표정이다.

이 그림을 통해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머리에 각인할 수 있었고, 이 '햇빛 속의 여인'을 실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이번 전시회는 에드워드 호퍼란 화가를 새롭게 알게된 기회이기도 했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1914/ '통로의 두 사람' 1927/ '햇빛 속의 여인' 1961/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문제의 이 작품을 비롯해 2층, 3층, 1층까지 이어지는 전시작품을 보며, 화가 호퍼가 인물들을 그린 그림들 속 한가지 공통점을 찾게 된 것. 바로 인물의 눈을 정면으로 보고 그리지 않는다는 것. 인물들은 화가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햇빛 속의 여인'도 그렇지만 일찍이 파리에서 그린 작품 '걷고 있는 파리지앵 여인과 '푸른 저녁' 뉴욕시기에 그린 '밤의 창문' '통로의 두 사람' '황혼의 집' 1960년대에 그린 '이층에 내리는 햇빛' 마지막으로 자기 아내를 그린 그림들에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물들은 화가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다. 화가만이 그들을 관찰하고 묘사했다. 멀리서 간격을 두고.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展. 수 년 전 책으로 본 화가의 그림에서 촉발된 호기심에서 출발, 화가의 65년 화업을 통해 묘사한 인물화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 흥미로운 전시였다.

작품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글·사진 이수빈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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