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8'…‘두타면세점’으로 동대문 제2의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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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8'…‘두타면세점’으로 동대문 제2의 르네상스?
  • 김형훈
  • 승인 2015.12.11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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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과 의류시장의 메카 동대문, 면세점으로 상권 활성화 조짐
두산, 지역 상생을 위해 발 벗고 나서 ‘르네상스’ 이끈다

1997년 11월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한다는 소식으로 신문과 방송이 뒤덮였다. 대한민국 경제를 오랜기간 긴 터널안에 들어가게 한 IMF 사태의 시작이었다. IMF로 인해 물가는 치솟고, 기업들은 연쇄부도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갑자기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외환 위기는 그렇게 국민들을 절망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유독 동대문은 활기찼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환율 때문이었다.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자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 바이어들은 동대문에서 전보다 더 싼 가격으로 원단과 의류를 구매할 수 있었다.

동대문에서 물건을 구매해간 일본 상인들이 큰 이득을 보자, 중국 러시아 동남아 등 한국 주변의 수많은 바이어들과 보따리 상인들이 동대문으로 몰려들었다. 공장은 IMF 전보다 오더가 더 많아졌고 매출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명예퇴직자들도 퇴직금을 들고 동대문으로 몰려들었으며, 각지에 뭉쳐 있던 자금들 역시 동대문으로 유입됐다.

사진=김선호기자 / 1998년도에 오픈한 밀리오레 건물 전경 사진=김선호기자 / 1998년도에 오픈한 밀리오레 건물 전경

그 즈음 동대문에 소매를 중심으로 하는 ‘밀리오레’가 들어서게 된다. 밀리오레가 성공하자 여기저기 대형 쇼핑몰들이 동대문에 들어섰다. 1998년 밀리오레 오픈을 시작으로 1999년 두산타워, 2002년 헬로apm이 들어서면서 동대문에 새로운 상권을 만들어냈다. 물론 동대문 상권엔 늘 활황기만 있었던 건 아니다. 명동 등 신흥 상권에 기존 소비자들을 뺏기기도 했다. 상인들은 상황을 타개해보고자 다각도로 노력했지만 가시적 성과를 얻지 못했다. 동대문의 부흥은 과거의 영광에 그치는 듯했다.

사진 = 김선호기자 / 동대문과 두타 전경 사진 = 김선호기자 / 동대문과 두타 전경

사진=김선호기자/ 최근 동대문에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사진=김선호기자/ 최근 동대문에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이런 까닭에 동대문 지역에 최근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은 꽤 긍정적이다. 정부와 기업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대형 면세점 유치가 확정됐고, 동대문 지역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11월, 시내면세점 특허권을 따낸 두산은 동대문 지역의 터줏대감 격인 두타에 대형 면세점을 꾸민다는 계획이다. 두산이 내놓은 면세점 운영 계획의 핵심은 ‘상생’이다. 향후 면세점에서 벌어들이는 영업이익 중 최소 10%를 순수 기부금으로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며, 별도 재원을 마련해 중소·중견기업과 협력사 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사진=김선호기자 / 연말맞이 장식을 한 두타 건물 사진=김선호기자 / 연말맞이 장식을 한 두타 건물

특히 두산은 패션 중심지라는 동대문 지역의 특징을 살리기 위한 패션산업 육성을 앞세운다. 국내 브랜드를 매년 30개 이상 발굴해 글로벌 판로를 지원할 계획이다. 더불어 기존 면세점과 거래하던 협력사들과의 관계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고, 기존 물류사업자의 설비와 시설도 그대로 사용하는 등 ‘상생’을 최우선 고려하겠다고 강조했다. 면세점을 필두로 한 새로운 바람이 98년도의 호황을 재현할 수 있을지, ‘응답하라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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