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경인선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화재, 예고된 인재...'사후약방문·안전불감증' 대한민국 [민병권의 딴짓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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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경인선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화재, 예고된 인재...'사후약방문·안전불감증' 대한민국 [민병권의 딴짓딴지]
  • 민병권
  • 승인 2023.01.0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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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후 1시 49분경 제2경인연결고속도로 북의왕IC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방음터널을 지나던 폐기물 집게트럭에서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했고 이 불은 플라스틱 소재로 마감한 방음터널 벽으로 옮겨붙었다.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터널 내 주행 중이던 차량은 그대로 갇히고 말았다.

이 사고로 5명이 숨지고 41명이 다쳤으며 터널 구간 830m 중 600m 구간이 불에 녹아내렸다. 차량 45대가 전소되고 현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지난해 10월 29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아직도 국정조사가 파행을 치닫고 있는 가운데 두 달여 만에 예고된 인재가 또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도로의 방음터널은 현행 소방법상 도로 터널로 분류되지 않아 각종 소방설비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안전 점검 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방음터널 내 화재 발생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도 같은 위험 구간이란 지적이 계속돼 왔다.

방음터널에 사용되는 소재는 설치와 비용이 저렴한 투명 플라스틱 형태의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을 사용한다. 무게가 가볍고 작업이 용이해 대부분 방음터널에 사용되는 소재다. 하지만, PMMA는 방음기능을 갖추긴 했지만, 화재에는 취약하다. 고온의 열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독성물질과 불을 뿜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방음터널의 구조상 일단 화재가 발생할 경우 도로 상부가 개방된 방음벽과 달리 밀폐된 공간으로 인한 대피 취약성으로 화재와 연기로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화재 발생 시 신속한 진화 작업도 어렵다. 터널 내 갇힌 차량으로 인해 소방 장비 진입이 어렵고 방음벽을 타고 올라간 불이 상층부로 옮겨붙으면서 크고 작은 불덩이가 차량으로 떨어져 2차 화재로 이어진다.

소방방재 전문가들은 "방음벽은 방음 등급만 있는 가연재라 보면 된다"며 "성능이 설치 후 3년밖에 못 가니, 불연 도료 등을 바르며 관리하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 방치된 후엔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고 말한다. 이어 “독일·일본처럼 불연재로 해야 하나 그러한 규정이 없고, 또 관리 규정도 없는 실정이다”고 설명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방음터널 화재 사고와 관련해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고수습도 중요하지만, 사고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 관계기관 합동으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구성하고 소방당국, 경찰과 함께 사고원인을 파악하고 있다"며 "아울러, 방음터널 및 유사시설에 대한 긴급 점검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이런 사고 후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번 화재 사고가 고질적으로 반복된 '안전불감증'에서 발생한 인재라는 점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미 방음터널에 대한 안전문제가 도로공사와 도로교통연구원 등에서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CEOScore Daily에 따르면 도로공사는 지난 2017년 ‘고속도로 방음터널 제연 및 피난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간하며 "터널 내부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할 경우 화염으로 인한 방음재의 용융·전소가 예상되고, 불완전연소로 유해가스 발생으로 터널 내 대피자들이 대피 시 불리해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도로교통연구원도 2018년 12월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 및 방재대책 수립 연구’ 보고서에서 “도로 상부가 개방돼있는 방음벽과 달리, 일반·방음 터널 내 발생하는 화재사고는 밀폐된 공간 특성으로 짧은 시간 내 화염이 확산해 화재·인명 사고가 발생하고, 화재 진압이 어렵다”며 “이에 대한 대비나 방재 대책이 제대로 연구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방음벽 화재 문제가 오래전부터 방치돼왔고, 이에 대한 규정 미비와 관리·감독 부재로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한다.

갈현고가교와 같은 방음터널은 전국에 15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소재의 방음터널이라면 이번과 같은 인재가 다시 발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안전보다도 비용을 우선한 공사가 이뤄진다면 국민의 안전은 담보될 수가 없다.

화재사고 발생 후 전면 통제된 제2경인선 구간 모습

국토부는 방음시설을 방염·불연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1999년 지침을 2012년 들어 삭제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전국 방음터널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후약방문인 셈이다.

사진=연합뉴스

민병권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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